여행 및 등산/여행 이야기

목포 DJ 발자취 따라걷기중 관람한 근대문화역사관

Brighten lee 1 2013. 12. 12. 06:30

 

글쓴이가 소속되어있는 행복나눔 산악회에는 다른 모임이 또있다.

민생평화광장이  그 모임인데 민생평화광장 회원과 행동하는양심 광주.전남지부 회원이 지난 11월9일(토)  "목포 김대중 대통령 발자취 따라걷기" 행사를 하여 참석하였다.  먼저 김대중 노벨기념관을 관람하고 최경환 민생평화광장 상임대표의 사회로 약 1시간의 토크쇼를 마치고 오찬을 즐긴후에 방문한곳은 목포근대역사관이다.

 

 

 

목포근대역사관은 근세 서양건축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 한국 역사의 자각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일제 침략의 실증적

유적으로 현재 남아있는 2곳의 동양척식회사 중 한곳으로 부산의 동양척식회사에 비해 규모면에서 앞선다.

또한 건축사적인 측면에서도 근대 건축기법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료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의 식민정책의 선봉기관, 조선농민 수탈기관으로서 일제 식민지 지배정책의 첨병이었고, 특히 동양척 식회사 목포지점은 그 가운데에서도 사리원 지점과 함께 가장 중요했던 지점이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은 일제 강점기하 대표적 수탈기관으로 역사성과 시대성이 있고, 지금까지 지정된 문화재 가운데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 없다는 점, 그리고 남아있는 부산의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보다 규모가 크다는 점, 또한 1920년경의 공공시설물로서는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고 일본 제국주의 사상이 근대 건축물에 상징적으로 표출된 유구로서 교육공간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

 

 

 

 

한때는 해군목포 주둔지(1946. 8. 18~1949. 6. 1) 이기도 하였다.

 

 

 

 

 

 

1층과 2층의 전시실이 준비되어있다.

1층은 목포의 과거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고 2층은 조선왕조의 최후모습과 일본의 침략전쟁의 모습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1층의 금고별실에는 일본의 참혹한 만행을 고발한 사진이 준비되어있어 어린이나 노약자,임산부가 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있어서 담지않았다.

 

 

 

 

목포의 과거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놓았다.

 

 

 

 

 

 

두께가 무려 15Cm나 되는 이금고는 동양척식회사가 사용하던 금고다.

조선육지면발상지 빗돌과 목화,면공장 관련한 사진이 전시되어있다.

 

 

 

 

이 빗돌은 목포 고하도에서 1904년 처음 육지면을 재배하기 시작한것을 기념하여 세웠다.

 

 

 

 

이렇듯 많은 농.수산물을 약탈해가고,또한  일본의 자본을 끌여들여 은행을 세우면서까지 수탈과약탈을 감행하였다.

 

 

 

                                            목포경찰서의 옛모습과 현재모습

 

 

 

                                       목포 상무관

 

 

                                     목포 상공회의소

 

 

 

 

                                      목포제빙냉장 주식회사

 

 

 

 

                                       목포신보사

 

 

 

 

                                       조선은행 목포지점

 

 

 

 

                                         목포 금융조합

 

 

 

 

                                            조선 식산은행 목포지점

 

 

 

 

                                         목포공립 상업학교

 

 

 

 

                                        유달산 정상

 

 

 

                                              일본 영사관

 

 

 

 

                                            목포극장

 

 

 

 

                                              유달 해수욕장

 

 

 

 

1층관람을 마치고 2층으로 오른다.

 

 

 

 

 

                                       총독부건물

 

 

 

 

 

                                    조선의 마지막 왕족 영친왕

 

 

 

 

                                   순종황제

 

 

 

 

                                    고종황제

 

 

 

 

                                   흥선대원군

 

 

 

 

 

 

목포근대 역사관 관람을 마치고 시내로 향한다.

 

 

 

 

DJ모친께서 운영하셨다는 영신여관터를 찾아서 발걸음을 옮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보면 계단 3분의2지점에 터가 나온다.

영신여관은 당시 선원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던곳으로 사창가와 비슷하여 모친께서는 DJ선생에게 밖의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셨다 한다.

 

 

 

 

이후 영신여관 터에 고려여관이 새로지어졌으나 몇년 지나지않아 고려여관도 헐리고 현재의 터만 남아있다.

 

 

 

영신여관 터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목포진지가 나온다.

목포지역은 예부터 내륙과 해상을 연결하는 군사상의 요충지였는데,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으로 목포영, 목포대라고

부른다. 조선 왕조 때 각 도의 여러 진에 붙은 종 4품의 무관인 만호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영, 만호진, 만호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러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조선 세종 15년(1433)에 목포병선을 황원(현재 해남)으로 옮기고, 세종 21년(1439)에 현재의 자리에 목포 만호진을 설치하였으며, 개항과 함께 고종 21년(1895)에 폐진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목포 만호진의 성이나 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원래 위치는 대략 현재의 목포시 만호동 일대일 것으로 추측되며, 이 일대 민가의 담장이나 축대에서 당시의 돌을 확인할 수 있다.  만호진의 성은 일본 영사관, 영국 영사관 기지로 사용되다가 민가로 전용되었으며, 만호동 공터에는 목포진 유적비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현재는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아프다.

복원사업을 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면 좋은텐데...

 

 

 

 

구 시가지에 지금도 남아있는 일본식 건물을 담아보았다.

 

 

 

 

 

 

 

 

목포역에 도착하여 여행자의 다리쉼을 해본다.

내일은 삼학도 요트장으로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