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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의 세계만 남아있는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Brighten lee 1 2013. 11. 5. 06:30

 

 피아골 직전마을에서 단풍구경을 마치고 연곡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연곡사는 깨침의 세계만이 남아 있는 도량이다.

깨침의 세계만이 연곡사의 수행의 역사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연곡사의 깨침의 세계는 석조문화의 진수라고 불리는 부도이다.

연곡사의 부도는 돌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가는 길을 알려주는 깨침의 세계이며, 선지식의 수행의 표상이다.

 

 

 연곡사는 신라 진흥왕 4년(543년)에 화엄종의 종사인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후기에 연곡사를 중창한 소요 태능 역시 연곡사는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시로 읊고 있다.

그러나 543년에 이 지역은 백제 땅에 속하였으므로 이때 창건되었다고 하는 기록은 믿을만한 근거가 없다.

한편 최근에 들어와 연기조사는 8세기에 실존하였던 인물로 밝혀졌다.

연기조사는 당시 화엄종과 연관이 깊은 승려로 인접한 화엄사도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따라서 연곡사는 화엄사의 창건과 연관하여 연기조사에 의해 8세기 무렵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곡사는 신라 말에 들어와 크게 번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연곡사에는 신라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부도와 삼층석탑 및 동부도탑비,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북부도와 현각선사탑비가 

남아있다.  모두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이르는 뛰어난 석조물들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이르는 시기에 연곡사는 상당히 번영하였던 사찰로 추정되며, 선찰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곡사 삼층석탑

전체적으로 신라계 석탑의 조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단부를 3층으로 구성하여 변화를 주었고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가 작아졌다.

세부에 있어서도 괴임부의 쇠시리가 형식화되었고, 옥개석의 층급받침도 4단으로 줄었을 뿐 아니라 각 단의 높이도 매우 낮아졌으며,

절수구의 처리방법도 약화되었다.

또한 옥개석도 상면이 상층 탑신에 비해 넓고 지붕면도 S자형의 곡선으로 만들었다.

신라계 석탑의 모습을 따르면서도 많은 변화를 준 석탑으로서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에서 많이 시대가 내려온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적광전

평면은 도리통 5간, 양통 3간으로 도리통은 어간을 다른 간에 비해 넓게 설정하였고, 협간과 툇간은 동일한 주간으로 설정하였다.

정면에는 어간에 사분합, 협간과 툇간에 쌍여닫이문을 달았고, 양 측면에는 전퇴에만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벽을 쳐서 감실형의 평면을 구성하였다.

 

 

 

 

 명부전

대웅전 앞마당 동쪽에 명부전이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연석을 이용한 외벌대의 나지막한 기단 위에 세워진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그리고 시왕을 모신 전각이다.

 

 

 

 삼성각은 칠성과 산신 및 독성을 모신 전각

 

 

 

 

 

 

동부도는 신라 말에 조영된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의 부도로 안정되고 날렵한 조형과 비례, 각 부분의 섬세한 조각수법과 다양하고 풍부한

장엄 내용은 동시대 부도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만하다.

한편 이 부도는 도선국사(827~898년)의 부도라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밀반출될 뻔 하였으나 다행히 현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부도비

 

 

 

 북부도를 보려면 경사가 가파른 이 길을 30m정도 올라가야 한다.

 

 

 연곡사 북부도

 

 

 

 

 연곡사는 대적광전의 향냄새와 더불어 국화향에 취하여 있었다.

 

 

 

 

 

 

 

 

 연곡사를 관람하고  나간다.

 

 

 

 

 

 연곡사 일주문

연곡사의 정문에 해당하는 일주문은 사역 가장 정면의 자연석으로 쌓은 돌계단 위에 서 있다.

아직 천왕문이나 금강문, 누문을 갖추지 못한 연곡사의 유일한 문이다.

1995년에 신축되었다.

 

 

 

지리산 피아골 단풍축제와 더불어 많은사람이 연곡사를 찾았고 더불어 연곡사에서 정성스럽게 가꾼 국화로 인하여 연곡사에서 즐기는

국화축제는 글쓴이의 가슴에 오랬동안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