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및 등산/산사를 찿아가는길

(해남여행) 우리나라 차(茶)의성지 초의선사의 일지암

Brighten lee 1 2013. 9. 16. 06:00

 

대흥사에서 700m 가량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조선 후기의 대표적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이자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草衣禪師)가 그의 "다선일여(茶禪一如)" 사상을 생활화하기 위해 꾸민 다원인 일지암이 나온다.

 초의선사는 39세 때인 1824년(순조 24)에 일지암을 중건하였는데, 1866년(고종 3)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40여 년간 이곳에서 독처지관을 한 유서 깊은 암자이다. 선사는 이곳에서 그 유명한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펴냈고, 다선일여의 가풍을 드날리며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의 석학ㆍ예인들과 교류하며 쇠퇴해가는 차문화의 중흥을 도모해 왔으므로 이 일지암은 한국차의 성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일지암을 찾아가려면 대흥사입구 해탈문 앞에서 등산로를 따라가면 된다.

 

 

 

 

초의(艸衣)는 조선 정조 10년(1786년) 4월 5일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흥성 장(張)씨이며 이름은

의순(意恂)이다. 초의라는 호는 출가 후 스승 완호(玩虎) 윤우(倫佑)로 부터 받은 것이며 일지암은 재호이다.

15세때 나주시 남평에 있는 운흥사로 출가하였으며 19세때 해남 대둔사에서 완호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탱화를 잘그려서 당대 오도자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한국 최고의 근대화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초의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서예는 천의무봉 바로 그것이었다.

강진에 유배중이던 다산 정약용으로부터 유학과 시문을 배웠으며 완당 김정희등 당대의 석학들과 종파를 초월

하여 교유하였다. 39세때 대흥사 뒷편에 일지암을 중건하고 이곳에서 초의선(艸衣禪),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專)등을

저술했다.   55세(1840년)에 헌종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종사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58세(1843년)에 고향을 찾아 집은 다 헐물어가지고 잡초만 무성한 부모의 무덤을 보며 눈물로 시를 지었는데 귀고향(歸故鄕)이라는

시이다.   1866년(고종 3년) 7월 2일 입적하시니  81세요 법랍(法臘)은 66세였다.

매년 음력 8월 1일 초의의 열반 일을 기해 추모행사인 초의문화제를 거행하고 있다.


일지암 이정표를 따라간다.

 

 

 

여기에 다달으면 이정표가 없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걸어간다.

 

 

 

최근에 공사를 마친듯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직진하면 등산로이니 이쯤에서 우회전하면 일지암이다.

 

 

 

 

 

일지암에 다달으니 차잎이 펼쳐진다.

아마 이찻잎이 초의선사께서 드시던 찻잎같다.

 

 

 

700m를 힘들게 올라왔는데 이까짓 계단 몇개쯤이야!

 

 

 

일지암 대웅전

정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자우홍련사

일지암의 본당인 초의다합(草衣茶盒)은 윗쪽의 연못에 평석을 쌓아올린 4개의 돌기둥이 누마루를 받게 하여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는

부속채 건물로서, 규모는 누마루 포함해서 3칸이며 형태는 방과 부엌을 "ㄱ"자로 꺾어 세운 기와집이다.

 

 

 

 

 

 

 

 

 

 

초의선사

 

 

 

자우홍련사앞의 연못

 

 

 

초정과 연못 사이에 축조된 석축에는 ‘다감(茶龕)’이라 새겨진 평평한 면이 끼여 있고 그 앞에는 이보다 넓은 판석이 하나 놓여 있다.

이 돌평상은 차를 마시며 선을 하던 좌선석으로 보기도 한다.

 


 

일지암" 편액이 붙어 있는 정자는 1980년 한국다인회 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조 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한 것이다. 이 초정은 가운데에 방 한 칸을 두고 사면에 툇마루를 두른 4평 규모의 띠집이다.

 

 

 

이 초정(草亭)은 가운데에 방 한칸을 두고 사면에 툇마루를 두른 4평 규모의 띠집이다.

그리고 일지암 본당은 윗 연못에 평석을 쌓아올린 4개의 돌기둥이 누마루를 받치게 하여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게 한다.

연못에서 잉어가 한가로이 노니는 등 누마루에서 구름 낀 산경을 멀리 내려다보는 다회(茶會)와 선유(仙遊)는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음미하게 할만하다.

그래서 초의의 시(詩)·선(禪)·다(茶)의 경지가 한데 어우러진 차 문화의 산실이 됐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곳에는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차나무가 정자 앞에 심어져 있고 선다를 음미했던 다정(茶亭)이 있으며, 집 뒤의 바위 틈새에서 솟아나오는 물이 나무 대롱에 연결된 수조에 머물다가 졸졸졸 흘러내리고 있다.

이 다천(茶泉)과 석수조를 비롯하여 차를 끓이던 다조, 위아래의 연못, 좌선석등 등은 옛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

 

 

 

 

다시한번 뒤돌아서 바라본다.

사립문을 열고 후니를 반갑게 맞아줄 초의선사의 얼굴을그려본다.

 

 

초의선사를 뵙고 내려가는길에  라이딩을 즐기시는분이 있어  담아본다.

힘들게 올라와 일지암에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니 세상근심걱정이 사라지는것 같다.

내일은 해남의 케이블카를 타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