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및 등산/여행 이야기

정월 대보름날마다 열리는 광주의 대표축제 고싸움놀이

Brighten lee 1 2013. 7. 17. 06:30

 

 

 

고싸움놀이는 마을사람들이 남자를 상징하는 동부와 여자를 상징하는 서부의 두 패로 갈라져서 싸움을 벌이는데 여자를 상징하는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고싸움놀이를 통해 마을사람들은 그 해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의 협동과 단결심을 앙양하고 악착같은 패기와 강한 투지를 키우도록 하였다.

이 놀이는 쌀농사 중심의 전남도 등에서 널리 행해졌던 줄다리기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정월 세시 민속놀이로, 삼한시대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말까지 천오백년 이상 칠석 옻돌마을에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러나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여느 민속놀이와 마찬가지로 금기시 되고 궁핍한 농촌경제 사정으로 간간히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이후 서서히 되살아나 소규모의 마을놀이로 행해지기는 하였으나, 체계적인 고싸움

놀이의 전통은 복원되지 못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마을의 뜻있는 청년들이 재현에 관심을 갖으며 활성화되기 시작 하였다.

그러던중 1967년 부터는 학술적 체계화가 이루어져 마침내1968년 전통민속놀이로 복원 재현되었다.

또한 1969년 제10회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여 고싸움놀이의 우수성과 가치를 널리알리게된다.

특히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게임때  개막식 식후행사로 재현 되기도한 광주남구 칠석동에 위치한 고싸움놀이 전수관으로 여행을 왔다.  (광주칠석 고싸움놀이 홈피참조)

 

 

 

 

 

고싸움놀이 영상 체험관 뒤에 테마공원을 조성하였다.

 

큼지막한 그네와 다리쉼을 위한 벤취도 보인다.

 

 

2층 건물의 전수관(1987년 준공)에는  고싸움놀이 보존회가 발족되었고, 문화기능의 전수와 교육을 위해 인간문화재와

기능보유자가 지정되어있다.

1층에는 고싸움놀이에 대하여 설명하고 2층에는 고가 전시되어있다.

 

 

고싸움놀이 행사장의 메인무대

 

 

전수관 2층으로 올라와본다.

2층에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때 시연되었던 고가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고싸움놀이는 대외적인 전국의 각종 문화행사에 참여 시연하여 문화재적 가치를 보여 주었으며,

특히 1986년 아시아 경기대회와 1988년 올림픽에서 개막식 후 공개 행사로 놀이 되어 세계인에게 한국인의 진취적 기상과

강한 패기를 널리 알려 세계적인 민속놀이로 자리 잡아 왔다.

 

 

 

 

 

 

참관을 신청한 학생들이 영상체험관에서 관람을 마치고 전수관으로 이동한다.

 

 

 

고싸움 놀이는 전국민속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었다.

88년도 올림픽 식후행사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제작하였다.

 

 

 

 

여행객에게 보여주기위하여  만들어진 고의모습

 

 

창고에 보관중인 고와 소모품들

 

 

영상체험 문화관 뒷모습

 

 

 

 

 

 

고싸움놀이는 1983년부터 고싸움놀이 축제가 매년 개최 되면서 광주광역시의 대표적인 지역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고싸움 축제는 고싸움놀이의 발상지인 칠석 옻돌마을에서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고싸움놀이 축제는 전야제 행사로 쥐불놀이, 당산제, 농악이 열린 후, 정월대보름날에는 풍물놀이와

고싸움놀이가 시연되고, 줄다리기, 연날리기, 널뛰기, 그네뛰기 등 전통 세시민속놀이가 함께 이루어져 관광객들에게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