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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의 대웅전은 왜 화마의 잿더미로 변하고 부직포로 가리워 졌을까?

Brighten lee 1 2013. 3. 8. 07:00

 

 

 

 내장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백제 제30대 무왕(600-640)37년인 서기 636년(백제멸망 660년24년 전)에 당시 도승이신 영은조사께서 지금의 절 입구 부도전

일대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웅전등 50여동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 란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098(고려조 숙종3년) 행안선사께서

전각당우를중창 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557년(조선조제13대 명종12년) 희묵대사가 법당과 요사를,1639년 (인조17년) 부용대사가 사우를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했으며,1779년 (정조3년) 영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다.  1923년 백학명 선사가 사세를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등을 신.개축하여 현 위치에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1951년1월12일 소실된 것을 마지막으로 창건이래 5화 7건으로 역사가 있다. 1957년 주지 야은스님께서

요사,1958년에 현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1964년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과 탱화를 조성 봉안 하였다.   그 후 1974년 국립공원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일주문, 명부전, 정혜루를 복원하고 사천왕문이 신축되었다. 조선조 성종때 석학 성임(1421-1484)은 정혜루기에서 영은사는 고려말엽 지엄선사의 개산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한 뒤, 정혜루는 당시 영은사의 문루로 1467년(세조12년)에 시작하여 다음해 준공된 3간으로 그 규모나 형태가 장엄무비하다고  전하고 있다.

최근 내장사는 향적원과 정혜원, 요사등을 신축하고 1994년 10월에는 사리탑을 건립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원래 내장산에는 명찰 영은사가 있었으니

영은사는 지금의 부도전 위치에 있었다. (내장사 홈피참조)

 

  전북 정읍시 내장산로 1253               063-538-8741

 

 

 

 부도전

 

 

 사천왕문으로 들어간다.

 

 

 

 

 사천왕을 거쳐서 경내로 접어드니 연못이 우리를 반긴다.

 

 

 플라스틱 바가지보다 정감있게 표주박이 바가지로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고 감로수로 목을 축인다.

 

 아! 턱하니 대웅전이 버티고 있을자리에 부직포 가림막이 무슨일입니까? 대웅전이 있어야할 자리에....

우리의 문화유산이 화재에 취약한 목조건물로 되어있고 한해평균 50건의 크고작은 화재가 발생하여 소중한 우리문화재가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는데 오늘 방문한 내장사 대웅전도 2012년 10월 31일 새벽2시경 전기난로 과열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등이 삽시간에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

하였다.  전라북도 기념물 63호인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잃었다.     현재는 부직포로 가려져 있지만 알아본 바에 의하면 대웅전 설계중에 있으며 올 하반기쯤

공사에 들어가 아마 2015년쯤에 준공하여 복원된 대웅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명부전

 범종각

 

 

겨울 끝자락에 울긋불긋한 연등을 보니 이것도 반갑다. 꼭 부처님 오신날만 연등을 보는게 아니고 지금보아도 좋다.

 

 

 내장사 종무소

 

 아마 스님들 기거하시는곳 같다.

 

 

 극락전

 

 다른사찰에 가서 기와불사도 불사지만 내장사 기와불사는 우리모두가 십시일반을 해야할것 같다.  빨리복구되게 기와불사하고 소원도 빌고...

 

 

천왕문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산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다른곳의 산사를 보고 나올때보다 내장사를 보고 나올때 가슴한쪽이 아려옴은 무슨 이유일까?

대웅전의 화재때문일까?  갑자기 무거운 머리를 뒤로하고 산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