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및 등산/등산 이야기

석봉과 토봉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광주 용진산

Brighten lee 1 2014. 7. 8. 06:00

 

용진산 입구 주차장에 세워진 금석 선생의 기념비

사학을 일으키고 8대 국회의원을 지낸분이다.

용진산(349m)은 본량과 임곡을 나누는 경계에 있는산으로 이름 그대로 들녘에서는 드물게 보는 겹겹으로 포개져있는 높은 산으로 그 안에는 동굴과 폭포가 있고 조선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 선생이 전국을 두루 돌면서 이산의 빼어난 경치에 빠져서 산사에서 몇일을 머물고 갔다하니 그 그윽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가히 짐잘할 수가 있다.
용진산은 그 주봉의 하나인 석봉(石峰)은 이름그대로 온산이 큰 바위로 이루어져 그 정상은 마치 붓끝처럼 뾰족하고 그와는 반대로 또하나의 주봉인 토봉(土峰)은 곁으로 보기에는 바위하나 없는 미끈한 흙과 우거지 짙푸른 숲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두 주봉을 둘러싼 크고 작은 연봉들은 흡사 바위에 부딪치는 거센 물결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아무튼 구 임곡 사호동에서 시작되어 본량 내왕산 마을로 끝나는 용진산 일대의 산과 물을 고루 갖춘 빼어난 풍경은 광산구가 갖는 평야지대에서는 드문것이며 광산군이 광주광역시로 편입된 후 광주시민 공원으로 지정되는등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광산구청 인용)

 

 


 

 

용진산 주차장

 

 

 

 

오늘의 산행은 주차장-석봉-토봉 의 원점회귀형 산행이다.

 

 

 

 

 

용진정사 입구풍경

 

 

 

 

용진정사

한말의 도학자 오준선(1851∼1931)이 강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오준선은 오하규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항규에게 입양되었다.

18세부터는 노사 기정진에게 배우며 학문의 폭을 넓혔으며, 일제의 회유정책에도 굽히지 않고 1917년에 용진산에 들어가 생을 마칠 때 까지 후학을 가르쳤다. 용진정사는 원래 용진사라는 절이 있던 곳인데 절이 허물어 진 뒤 정안 이씨가 그 터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 오준선의 뜻을 전해 듣고 절터의 일부를 내주어 건물을 짓게 되었다. 오준선이 죽은 뒤 문인들이 강당 동쪽에 3칸의 용진영당을 세우고 1924년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를 모셨다. 영당의 좌우벽에는 큰아들 오헌수와 둘째 아들 오동수의 영정이 함께 걸려 있다.

 

 

 

 

 

 

 

 

용진정사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삼거리에서 다리쉼을 한다.

 

 

 

 

오르는 계단에는 기암괴석이 자리잡고 있었다.

 

 

 

 

멀리 조망되는 저수지는 지산 저수지 같다.

 

 

 

 

힘들게 올라간 곳에서 조금씩 조망이 터진다.

 

 

 

 

기암괴석 사이로 보이는 조망은 환상적이다.

 

 

 

 

철제 사다리가 버티는 이곳은 50도 경사가 자리하고 있다.

 

 

 

 

 

멀리 가야할 토봉을 담아본다.

 

 

 

 

 

토봉 입구의 모습

 

 

 

 

다음 목적지인 토봉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지나온 석봉을 뒤돌아본다.

 

 

 

 

이윽고 나타난 용진산 정상 토봉에는 통신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안고있는 돌무덤

 

 

 

 

아쉬운 정상 인증샷을 남겨본다.

 

 

 

 

산에서 즐기는 오찬

 

 

 

 

하산길에 다시본 토봉입구

 

 

 

 

기암괴석의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용진산

 

 

 

 

 

기암괴석의 바위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성분 배짱이 보통이 아니다.

 

 

 

무더운 날씨로 힘든 산행이었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여름산행중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