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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최초의 장애아,고아원을위한 사역을 시작한곳 - 우월순 선교사 사택

Brighten lee 1 2013. 9. 24. 06:30

 

 우월순 선교사 사택(광주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6호)

 

50년이 넘는 세월을 광주에서 살면서 양림동하면 그저그런 동네의 일부분으로 알고 지냈으나 블러그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림동에는 '근대 역사문화의 둘레길'이 조성되어있다.

아울러 둘레길탐방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는데 이 프로그램으로 들어가본다.

양림동은 100여년전 광주최초로 서양근대문물을 받아들인 통로이자 희생과 나눔의 공동체역사를 태동시켰던 광주정신의 발현지로서

손색이없다.  이러한 문화자원들을 시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소중히 기억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문화해설사를 통하여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내고장 알리기 프로그램이다.

 

 

 우월슨 선교사 사택

우월슨(Robert Wilson Missionary Parsonage) 제중병원장은 1908년 이집에서 장애아와 고아들을 위한 지역최초의 고아원 사역을 시작 하였고,서로득과 함게 어린이 주일학교를 부흥시켰다.  1909년부터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지내던중 조선총독부의 이전지시에따라

멀리 여수로이전,애양원을 설립 평생병자를 가족처럼 보살폈다.

1910년전후 그가지은 아름다운 회색벽돌 기와집이 1922~1923년도에 불이나 후에 다시 건축되어 한동안 제중병원 사택이 되기도 하였다. 평범한 서양식 건물에 그치지않고 1949년 여기서 전쟁고아 보육이 시작되어 수많은 고아들을 살리기도 하였다.

 

 

 

 

 

 

 

 

 

100여년의 시간을 간직한 은단풍의모습

 

 

 

 손양원목사 순교비

손양원목사(1902~1950)

1902년 경남함안에서출생

신학교졸업후 여수나병환자 요양원인 애양원교회에서봉사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으로 순천에살던 두아들이 공산분자에의해 살해되었으며,

계엄군에의해 살해범을 체포했지만 오히려 살해범 구명운동을 펼쳐 자신의 양아들로삼아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몸으로 실천한다.

1950년 9월28일 새벽 그의나이 49세때 퇴각을 준비중이던 공산군에게 전향을 거부하였다고하여 총살을 당함.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목사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선교사 사택을 구경하고 선교사 묘역을 찾아본다.

 

 

 

 

 

 

 1909년부터 오웬목사와 그 가족이 여기에 묻히기 시작하여 국내외에 유례가드문 선교사 집단묘역이 되었다.

이들의 봉사와희생은 그 후손들에의해 115년이 넘도록 이어지고있다.

 

 

 

 65 디딤돌에는 선교사,순교자분들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우월슨 선교사 사택과 선교사 묘원을 들려 참배를 하고 내려와 맑고푸른 가을하늘에 묻혀있는 무등산을 바라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