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주년 5.18 행사장에서 불리어지길 바라는 "님을위한 행진곡"
"영원한 빛"
광주 5.18국립묘지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탑신 중간의 두손을 모으는 형상은 추모와 염원의 상징이며
탑 중간의 조형물은 "난형환조"로 구천을 떠도는 영령들의 혼백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생명의 씨앗을 의미한다.
ㅁ.5.18민주화 운동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에 따라 취해진 계엄군의 광주.전남지역 무력진압과 관련하여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시민과 학생들이 부당한 국가권력 신군부의 주체세력에 항거한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며 한국 현대사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을 끝으로 탄생한 정부가 "제5공화국"이다.
공식 집계된 숫자만 사망154명, 행불자76명, 부상자.연행. 구금자등 4,406명의 피의 댓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의
제 5공화국인 것이다.
광주의 아픔이며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역사적인 사건의 생채기로 생긴 추모관이다.
국립 5.18 묘지에는 입장하면 좌측으로 건물하나 있다.
애초부터 이곳에는 묘지가 들어서지말고 건물도 들어서지말고 공원이 생겼으면 좋았을 것인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추모관 안으로 입장을 한다.
좌측으로 전시실이 글쓴이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문으로 들어서면 33년전의 시간여행을 할 수있다.
좌,우측 벽면에 5.18당시 현장에서 우리국군인 계엄군에 의해서 희생된분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어디 희생된분들이 이분들 뿐이랴!
"영원한 빛"
탑신 중간의 두손을 모으는 형상은 추모와 염원의 상징이며
탑 중간의 조형물은 "난형환조"로 구천을 떠도는 영령들의 혼백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생명의 씨앗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있는 이 어린이(80년 당시 4세)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쏜사람은 있으되 발포명령을 내린사람은 없는 인명살상용 총탄
추모관의 대표적인 추모공간으로 2층에있는 민주의샘에서 흘러내린물이 역사의 강을건너 원추형의 상징을통해 빛과눈물로
승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의 촛불은 추모의 염원이며 수조는 눈의모양을 상징화 했다.
80년 5월 광주의 구멍가게를 재현한 모습
ㅁ.5.18 민주화운동 경과
1980. 5. 17.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1980. 5. 18.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의 충돌
1980 5. 20. 차량시위를 계기로 광주시민들의 적극적인 저항
1980 5. 21. 계엄군의 금남로시민을 향한 작전개시
광주를 외부로부터 완전고립
시민군 조직 및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위한 다각적노력 전개
1980. 5. 27. 계엄군의 광주시민 해산작전
1994. 5. 5.18 민중항쟁 연합이 진압책임자 35명을 서울지검에 고소,법정투쟁 시작
1996. 12. 21.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 특별법제정
2002. 1. 26. 광주민주화 유공자 예우에 관한법률제정
1980년 5월14일 고려대 총학생 회장실에서 서울지역 27개대학 총학생회 대표40명 회동하여 14일 오전부터 가두시위를 결의한다.
그러나 총학생회 대표들은 이른바"서울역회군"을 결정한다.
그 이유는 시민들과 국민에게 호응이없는 상황에서 군과의 충돌을 하지않기로한다.
이렇게하여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학생들은 학교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것을 "서울역회군"이라한다.
그러나 이 불씨는 서서히 광주를 향하기 시작하는줄은 아무도 몰랐다.
5월16~5월17일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폭풍전야
5월 18일 "작전명: 화려한 휴가" 무자비한 탄압의 시작
5월 19일 7공수여단,11공수여단의 추가증파, 또 추가된 3공수여단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무자비한 탄압에 분노한 시민들
5월 20일 무자비한 탄압에 차량을 앞세운 시민들의 저항시작 택시.버스,아시아 자동차(지금의 기아차)출동하기시작한다.
밤 11시경 광주역앞 3공수여단과 시위대와의 대치상황에서 첫번째 발포가 시작되며 광주의 상처는 커지기 시작한다.
5월 21일 계엄군에게 오전 10시경 실탄지급했고 오후1시부터 시민들에게 집단발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집단발포로 50명이상이 숨지고 500명이상이 총상을 입었다.
이때 발포명령을 내린사람은 누구인가!
군대특성상 명령없이 국민을 상대로 발포할 수 있는가?
막무가내로 당할수 없는 광주시민들의 총기무장시작 (경찰서,방위산업체,예비군 중대본부,파출소등)하여 소위 시민군
탄생으로 유혈사태를 막기위해 공수부대원들은 오후5시30분 도청에서 퇴각하게 된다.
5월22일~5월 25일 계엄군 퇴각에따른 무정부사태 였으나 치안상태는 좋았음, 신군부 세력에서 해방된 광주
5월 26일 신군부의 광주 무력진압이 시작된다. 이른바 "상무충정작전"으로 광주를 진압한다.
5월27일 신군부의 구 전남도청 탈환은 폭도소탕작전 이었다.
10일간의 무장투쟁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5.18 광주사태를 간첩과 북한의 사주에의한 폭동이라고 조작및 왜곡하여 진실을 덮으려한 신군부세력들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구타한후 질질 끌고가는 모습을 미니어처로 제작한모습
발포명령을 내린사람은 없고 총상에의한 사망자는 있는 5.18광주 민주화운동
5.18 청문회에서 자위권 발동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글쓴이도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군대를 전역한지 30년이 다지만 군대특성상 명령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집단인데 태연히 거짓말을...
5.18특별법에의해 전두환.노태우등이 내란 및 살인혐의로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현대사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할 수 있었으나
시간을 조금더 거슬러 올라가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고 친일에대한 과거청산을 하지않고 6.25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잘못된 국가의 시작은 이때부터가 아니었나 글쓴이는 생각해본다.
친일에 대한 확실한 과거청산이 먼저 이루어지고 임시정부가 들어서서 정부가 세워졌으면 신군부의 등장같은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광주의 아픔도 발생하지 않았을것이다.
"영원한 빛" 조형물
5.18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나오는데 눈안에 들어오는 프랑카드가 있다.
아~ 5월의 영령들이시어 고이 잠드소서!
님을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다가자던 뜨거운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함성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국가에서 특별법으로 국립묘지도 만들고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관한 법률까지 제정해놓고 행사때 부르는 노래한곡으로 보훈처에서
이 노래는 안된다하고 재야단체와 여.야 국회의원들도 한목소리로 행사곡으로 사용할려고 하는데보훈처에 못하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님을위한 행진곡은 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당시30세)과 1979년 노동운동중 사망한
박기순(당시21세)의 영혼결혼식을 담은 노래굿으로 만들어졌다.
백기완의 시에서 가사를 따고 광주지역 문화운동가 김종률의 작곡이다.
투쟁의 현장에서 언제나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제5공화국당시 전두환과 신군부의 정권에 반하는 상징적인 노래로 금지곡이 되었으며
시간이 흘러 노태우 정권에서 풀렸다.
이제는 운동권 뿐만이 아니라 일반시민도 부르는 대중가요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남을 애창곡이 되었다.
MB정권에서도 금지시키고 현 정부에서도 금지 시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노래하나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5월18일 이면 망월동 5.18국립묘지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33주년 5.18기념행사를 할때 온국민이 함께제창하여
진정한 국민대통합의 그림을 그려본다. (5.18 민주화운동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