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애기단풍도 유명하지만 신록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고창의 "문수사"
문수산 입구에 도착하니 라이딩하는 분들이 많이 도착하여 있다.
글쓴이가 블로그 포스팅 하듯이 라이딩하는분들도 자기의 취미를 즐기는 재미가 있으니...
석가탄신일 맞이 산사를 찿는길 제2탄으로 전라북도 고창군의 문수사이다.
애기단풍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문수산 문수사를 찿아보고 가을 단풍때 다시와볼것을 약속한다.
문수사를 가기위해 고갯길을 올라가는데 약 100여명의 라이딩족들이 힘겹게 오르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거친숨소리와 은륜의 반짝임이 라이딩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거친 숨소리가 글쓴이의 귓가에 들리는듯 하고...
라이딩족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길이다.
수령 100~400년된 단풍나무 500그루가 문수사 입구에서 문수산 중턱까지 좌,우측 숲속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크기는 직경30~80cm,높이 10~15m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풍나무 숲으로 특히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다.
가을에 단풍이 온천지를 덮을때 다시와볼것을 약속한다.
문수사 올라가는길
신록이 익어가는 문수사 입구의 모습
울 김여사는 무슨 소원을 빌고 있을까?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4년(644년) 신라의 명승 자장율사가 당나라로 건너가 청량산에서 기도를 거듭한 끝에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귀국한 후,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가 당나라 청량산과 흡사하여 문수산에 있는 굴속에서 몇 일간 기도하자 역시 문수보살이 나타나므로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창건이후 고려시대의 역사가 전하지 않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조선시대의 역사는 「축령산문수사중건사적」·「문수사한산전중창상량문」·「축령산문수사내원초창상량문」을 통해서 문수사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 사적기를 종합해 보면, 1607년(선조 40)에 절을 중건했다 하나 자세하지 않으며, 1653년(효종 4)에 성오(性悟)대사와
상유(尙裕) 스님이 대웅전을 중창함과 동시에 대웅전의 삼존불을 조성하고, 명부전 시왕상의 단청을 했다.
절은 이후 2차에 걸쳐 더 중수하였는데, 1764년(영조 40)에는 신화(信和) ·쾌영(快英) 두 스님이 선운사로부터 이곳으로 이주하여 1차 중수를 하였고,
그리고 대웅전 뒤에 있는 양진암(養眞庵)도 신화⋅쾌영 두 스님이 대웅전을 중수하면서 함께 창건했다.
그 뒤 1835년(헌종 1)에 당시 문수사 주지였던 우홍(牛弘) 스님이 2차 중수를 하였다. 그리고 이후 1876년에는 고창현감 김성로(金星老)의 시주로
묵암 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전통사찰 종합정보참조)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만세전과 문수전 사이에 있다. 건물의 형태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다포계 건물이다.
이 대웅전은 소규모 건축물이면서도 출목수가 많은 다포로 되었고, 맞배지붕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며 쇠서의 조각수법도 건실하다.
주초는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주초이고 기둥은 두리 평주로 되어 있다. 또한 천장은 정자형 천장으로 되어 있다.
이 대웅전은 내장사 대웅전과 서웅 조계사 대웅전 등을 설계하고 지은 고창출신 대목 유익서의 작품이라 한다.
내부의 상단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주불로 안치했으며, 그 왼쪽에 대세지보살좌상, 오른쪽에 관세음보살좌상을 모시고 있다.
삼존불 뒤에는 후불탱화가 있으며, 왼쪽 중단에는 제작년도를 알 수 없는 신장탱화가 있다.
마침 글쓴이가 찿아갔을때 100대사찰 탐방단이 찿아온 날이다.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
용지천 지혜의샘에서 목을한번 축이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문수사 경내를 둘러보고 나가는데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가오는 석가탄신일을 맞아 신록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고창 문수사의 여행도 추천하고싶다.